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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유진 오닐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그들의 긴 여로는 오랜 세월이 흘러 유진 오닐의 손에 마무리된다. 이 이야기는 작가 본인의 자서전으로써, 그의 지치고 외로운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족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여느 평화로운 가정집들과 다름없이 소소한 농담을 주고받는 1막의 모습에서, 점점 이들의 일상 속에 깊이 들어갈수록 어딘가 어긋나는 대화와 서로에 대한 불신, 공격, 저마다의 결핍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모두가 떠난 현재, 이제는 노년이 된 이 집의 막내아들 유진 오닐이 자신의 가정사를 스스로 세상에 밝혀내고자 함으로써, 모두를 용서하고 화해하기 위한 마무리를 짓는다. 그리고 이 마침표를 끝으로 그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 아내는, 그가 이 희곡을 집필하는 도중 서재에서 나올 때면, 붉게 충혈된 눈과 수척해진 모습을 띄곤 했다고 한다. 너무나 밉지만 너무나 사랑했던, 애증의 가정사는 어쩌면 그가 한 평생 마무리 지어야 했던 그 만의 숙제가 아니었을까.

    줄거리

    제임스 티론은 한때 잘나가던 영화배우이자, 가장이다. 그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한 역할만 집착하다 캐릭터가 고착화되었고, 현재는 벌어들인 돈으로 땅을 사기에 여념이 없다. 이날 아침, 그의 아내 메리는 모르핀 중독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고, 두 아들 제이미와 에드먼드와 함께 온 가족이 식사를 하며 평화로운 듯 시간을 보낸다. 에드먼드의 부쩍 늘어난 기침으로 가족들이 걱정을 한다. 티론은 게으르고 술과 여자에만 빠진 제이미를 혼을 내고, 형이 우상인 에드워드에게 안 좋은 본보기만 보인다며 탓을 한다. 제이미도 아버지가 구두쇠라서, 값싸고 실력 없는 의사 하디에게 에드먼드를 맡겼다면서 공격을 한다. 메리가 자꾸 2층에 올라가는 모습에 가족들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중독 치료가 완전히 성공한 것만 같았는데 메리는 계속해서 약을 하러 올라간다. 떠보는 가족들의 말에도 일관된 초연한 표정으로 모른 척을 한다. 그녀를 혼자 두지 않으려 감시하지만, 자신을 감시하는 가족들의 시선에 적대감을 표시한다.

    서먹한 점심시간, 하디 의사에게 걸려온 전화로 인해, 이들은 에드먼드의 치료를 두고 다시 싸움이 터진다. 메리는 돈 몇 푼 아끼고자 동네 허술한 의사에게 진료를 맡긴다며 티론을 탓하고, 또다시 위층으로 올라간다. 남아있는 세 부자는, 또다시 서로를 탓하고 이해하고 다시 공격하는 다툼의 굴레를 반복하고, 잠시 후 초연한 눈빛의 메리가 내려온다. 약에 취한 그녀는 끊임없이 과거를 들춰낸다. 티론을 너무 사랑했던 나머지, 아이를 두고 순회를 가는 티론을 따라갔고, 그 사이 홍역에 걸린 7살의 제이미는 신생아인 동생 방에 들어가서 홍역을 옮긴다. 이 사고로 아이는 죽고, 이 슬픔을 잊기 위해 태어난 아이가 지금의 에드먼드다. 에드먼드를 낳을 때 돌팔이 의사에게 고통을 덜기 위해 모르핀을 처방했고, 그 후로 그녀는 모르핀 중독자가 되었다. 에드먼드를 낳지 말았어야 했단 죄책감과, 제이미가 일부러 홍역을 옮겼을 거란 믿음은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고, 약에 취한 그녀는 홍수처럼 감정을 쏟아낸다.

    저녁시간, 메리는 하녀 캐슬린과 함께 드라이브를 도중 약국에서 모르핀을 산다. 캐슬린에게 수녀가 되고자 했던 어린 시절의 꿈과 티론을 사랑했던 이야기를 하며 과거에 젖어든다. 이윽고 들어온 티론과 에드먼드는 또다시 오락가락 몽롱한 메리와 날선 공격을 주고받았다. 에드먼드는 폐결핵 진단을 받았고, 이 사실을 끝내 부정하며 돌팔이 의사의 오진, 그리고 질투로 인해 너와 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아버지의 속셈이라고 얘기한다. 이런 엄마의 모습에 약쟁이라고 비난하며 사라졌고, 남은 티론과의 다툼 끝에 메리도 약을 하러 사라진다. 혼자가 된 가장 티론은 저녁식사를 홀로 마친다.

    늦은 밤, 티론과 에드먼드는 카드놀이를 하며 서로에 대한 속내와 가슴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티론은 돈에 민감한 구두쇠가 될 수밖에 없던 가난한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냉소적이고 음울한 문학 감성을 지닌 에드먼드를 나무란다. 에드먼드도 어머니의 초기 증상에 돈이 아까워 치료를 방치한 티론을 탓하고, 자신을 저렴한 주립 요양원에 보내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이들은 싸우고 이해하기를 반복하고, 이윽고 꼭지가 돌게 술을 퍼마셨다는 제이미가 들어온다. 동생을 미워하고 질투했고 또 너무나 사랑한다는 속내를 밝힌 제이미, 그리고 세 부자는 조금씩 서로를 용서하려 애쓴다. 메리가 내려오는 소리에 세 사람은 긴장하고, 메리는 결혼식 때 입은 웨딩드레스를 들고 기이한 모습으로 내려온다. 이미 그녀는 온전히 현재에서 벗어나 과거에 갇혀 있었고, 세 사람을 아예 자신만의 세상 속 존재로써 취급을 한다. 에드먼드가 자신이 폐병이라며 외쳐보지만 그녀의 세상에는 들리지 않는다. 수녀가 되고 싶었던 소녀 시절로 돌아간 그녀의 환상 속 이야기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long day's journey into the night (1962)

    해석

    희극 속 대화들을 읽으면서, 이렇게 혼란스러웠던 적은 처음이다. 이 가족들은 대화는 온전한 대화라고 할 수 없었다. 서로의 생각을 말로 주고받고 들어줘야 하는 데, 이들은 줄곧 자신의 말만 한다. a를 얘기하면 b를 얘기하는 식이다. 서로를 공격하고 비난하고, 다시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결핍과 원망이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얽혀있다. 풀어내려고 하지만 대화가 거듭될수록 더더욱 엉켜가는 느낌이다.

    티론의 가장 큰 결핍은 가난이다.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란 티론은 배우로 성공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돈에 대한 집착으로, 그는 다른 역할에 도전하지 않은 채 셰익스피어 안에 갇혀버렸고, 벌어놓은 돈으로 땅을 사기에 이른다. 그는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여유를 제공하지 못했으며, 이 점은 가족 모두에게 치명적인 결함을 안겨준다. 에드먼드의 폐병을 값싼 의사에게 진료받게 하고 저렴한 요양원에 보내는 것, 또 이 값싼 의사는 메리의 출산 후 통증을 오진해 모르핀 중독까지 가게 했고, 초기 중독 치료마저 제대로 받지 못한 것, 자신과 달리 돈을 벌지 않고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하단 이유로 제이미를 비난하고 상처 준 것. 그럼에도 젊은 시절, 자신의 배우라는 꿈을 위해 집 한 칸 없이 호텔 여기저기를 옮겨가며 가족들은 희생한 점. 그의 가족들을 향한 사랑은, 돈이라는 집착에 갇혀 올바르게 표현되지 못했다.

    큰 아들 제이미는 일곱 살이 되던 해 홍역에 걸린다. 부모님이 연극 순회로 집을 비웠고, 그 사이 동생 방에 들어갔다가 홍역을 옮긴다. 아직 갓난아이였던 동생은 결국 죽고 말았다. 이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원망과 사랑에 대한 결핍으로 그는 다소 게으르고 삶의 열망에 비관적인 성향으로 자란다. 성공에 대한 야망 없이 술과 여자에만 빠져 산다. 동생이 죽고 새로 태어난 에드워드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란 에드워드가 밉고 질투 나기도 한다. 부모의 사랑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구두쇠인 아버지와 모르핀 중독인 어머니가 증오스럽다.

    에드먼드는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죽은 형을 대신했다는 운명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도리어 자신이 태어남으로써 어머니가 모르핀에 중독되고 집안에 어둠이 내렸다는 죄책감도 크다. 해군 입대 도중 폐결핵에 옮았으나, 모르핀 중독의 어머니는 이 사실을 혼란스러워하고, 아버지는 끝내 돈이 아까워 값싼 진료와 요양원에 보낸다. 사랑받고 있지만 온전히 사랑받고 있지 않으며, 세상에 태어난 자신의 존재조차 온전하지 못하다. 어머니의 중독 증세가 악화될수록 마음속 상처는 커져가고, 꾹꾹 담아왔던 응어리를 입 밖으로 표출하기 시작한다.

    이런 각자의 아픔을 담아두고 애써 평온하게 지내는 이들에게 쌓아온 감정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메리의 모르핀 중독이다. 가족들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희생한, 다정하고 아름다웠던 메리는 중독이 심해질수록 공격적이고 초연한 무서움을 뿜어낸다. 담아두었던 그녀의 결핍들이 표출된다. 티론을 너무나 사랑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결혼했지만, 돈과 일에만 몰두한 그는 메리에게 온전한 가정과 따뜻한 애정을 주지 못했다. 7살 된 제이미가 질투해서 일부러 아이를 죽였다는 원망, 아이를 대신해 태어난 에드먼드로 인해 모르핀 중독에 걸렸다는 원망. 그리고 의사에 대한 불신. 그녀는 성모 마리아에게 고백한다. '사실은 식구들을 다 쫓아내 버리고 싶으면서. 경멸과 혐오감에 함께 있기도 싫으면서. 식구들이 다 나가버려서 좋으면서, 그런데 성모님, 왜 저는 이렇게 외로운 걸까요?' 그녀의 가족에 대한 애정과 증오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들이 마약을 통해 안개가 걷히듯 드러난다. 끝내 마지막, 그녀는 현실과 과거를 구분하지 못한다. 과거 피아노를 치고 수녀가 되고 싶었던 어린 소녀로 완전히 돌아간다.

     

    소통의 부재, 외면, 회피. 이 가족들은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 주지 못한 채 외면하고 도망간다. 이 희극 속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소재인 '안개'처럼, 이들은 자신의 아픔을 숨겨두다 곪고 곪아 터져버렸다. 각자 인물들 사이엔 존재하지 않는 안개의 벽이 서려있다. 어렴풋이 보이는 모든 갈등의 원인들을 눈 감아 버린 채 애써 부정한다. 마지막, 술에 취한 세 부자는 서로의 안개를 조금씩 걷어내고 용서와 이해를 구하는 솔직함으로 다가간다. 이들의 결속이 메리의 치료에 힘이 되기를 바라보지만, 작가의 말로를 보아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죽은 아이와 이름만 바꿔 등장한 에드먼드는 오진 오닐 자신이 투영돼있다. 호텔방에서 태어나 호텔방에서 죽음을 맞이한 오진 유닐. 따뜻한 가정의 울타리 없이 외롭고 아팠을 그와 가족들의 일생을 이 극을 발표함으로써 본인이 마무리 짓는다. 이들의 비극은 깊고 깊어서, 시간이 흘러 자연히 치유되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외로웠을 그가 이제 그만 따뜻하고 평화로운 긴 여로 속에서 행복하길 바란다.

    명대사

    '전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했어요. 갈매기나 물고기였더라면 훨씬 좋았을거예요. 인간이되는 바람에 항상 모든것이 낯설기만하고, 진정으로 누구를 원하지도, 누가 진정으로 원하는 대상이 되지도 못하고, 어디속하지도 못하고, 늘 조금은 죽음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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