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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티스트 백남준

    활동

    비디오 아트의 선구주자인 백남준. 90년대에 태어난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거라곤 초등학교 미술수업 때 교과서에서 본 티비로 가득 찬 로봇모양의 작품들이 전부였다. 비틀즈, 퀸 등 60년 대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가지던 중, 백남준이 주도했던 플럭서스 운동에 알게 되었고 그가 꽤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며 동시에 철학적이고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플럭서스는 50년대 중후반부터 전쟁 이후의 허무주의적이고 비판적인 의식을 바탕으로 사회, 정치, 경제, 과학, 예술 등의 모든 방면에서 발생한 예술 전위 운동이다. 혼란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예술의 경향성을 가지고 미국, 독일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는데 기존의 예술적인 것이 대한 제도적 전통적 통념을 거부하면서 실험적이고 미지의 것을 추구하고 있다. 6분의 긴 길이로 세상을 발칵 뒤집었던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처럼,

    그 시대의 억압과 전통적인 통념은 그것을 깨트림으로써 예술사 가치에 큰 획을 긋는 작품들이 쏟아져나왔다.

    내가 태어나서 직접 느껴보지못한 것이 한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고 절절한 시대이다.

     

    플럭서스 운동

    플럭서스는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았다.뒤샹의 작품을 통해 예술의 지배 구조에 대한 도전과 반항심을 배웠고, 실험적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그러나 다다이즘과 근본적인 차이점은 현상을 전면 거부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예술, 사회적 실천을 확장시키려 했으며 실천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또 백남준의 스승이자 음악가인 존 케이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존 케이지는 우연적인 과정을 통해 그 과정 자체를 음악을 만들어냈고, 플럭서스로 하여금 예술에서 목적을 없애는 새로운 방법, 탈장르와 이미학적인 개념들을 제시하였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작품을 조금 살펴보면 이들의 사상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데, 기존의 미술사적인 작품에서 벗어 나 굉장히 종합적인, 음악과 퍼포먼스 등 예술의 모든 장르가 제한과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우연적인 형태를 띄고 있다. 마치 무대 위 한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 하다.

     

    존 케이지

    백남준은 존 케이지와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우연과 침묵, 그리고 일사의 소음을 통해 서구 음악의 전통에 저항한 존 케이지의 예술세계에 매료되었다. 그 후 그가 새로운 비디오아트의 세계를 여는 데 있어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백남준이 그에 대한 존경은 여러 퍼포먼스에도 드러나 있다.그는 1960년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 곡을 연주하는 무대에서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고 샴푸를 뿌린다. 이는 권위에 대한 파괴, 즉 현대음악의 화신이라고 하는 존 케이지를 상징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그를 모독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한 시대를 끝내고 새 시대를 연다는 의미로 더 높은 차원의 예술 세계가 열릴 것임을 예고한다. 정말 과격한 존경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그 후 존 케이지도 백남준의 피아노를 도끼로 박살 내는 퍼포먼스를 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애정을 격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들이 만들어나간 예술세계와 메세지들은작품 이라는 것을넘어 우리에게 삶의 의미와 존재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존 케이지의 무엇이 그토록 그를 매료시켰던 걸까?

    미국의 작곡가이자 미술가였던 존 케이지는 1912년 캘리포니아주의 엘에이에서 출생하여 92년 미국 뉴욕에서 사망하였고 작품의 장르를 허물고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일상의 모든 소리들을 음악이라고 여겼던 그는 준비된 피아노와 우연성이라는 것에 기초하여 작곡하였고 부정확한 가보를 사용하였다. 라디오와 리코딩 장비를 사용하면서 퍼포먼스 아트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우연히 발생하거나 의도하지 않는 소리라도 그 모두를 있는 그대로의 음악으로 받아들일 만큼 장르와 편견을 두지 않았다.

    존 케이지 <4분 33초>

     

     

    이 작품이 바로 존 케이지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 4분 33초 이다. 여기 악보가 보이는가?

    아무것도, 그 어떤 음표도 없는 백지의 악보일 뿐이다. 이 4분 33초의 연주를 보면

    놀랍게도 그는 4분 33초 동안 정말 이 악보대로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는다.

    그는 초시계 하나를 들고 무대에 올라와 정말 가만히... 가만히... 침묵을 지킨 무음의 연주를 하고 내려간다.

    그는 도대체 이 침묵의 연주 속에서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이전에 세상의 모든 소리를 실험하기 위해 완벽한 정적인 공간의 무향실을 들어간 적이 있다. 아무 소리가 없는 방 이었다. 하지만 그의 귓속에서는 여전히 소리들이 들렸다. 그때의 경험을 두고 그는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 이 두 개의 소리를 들었다. 높은 소리는 내 신경계가 돌아가는 소리고 낮은 소리는 혈액이 순환하는 소리라고 얘기한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결국 그는 절대적인 무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아까 보았던 악보대로 연주 후 그는 피아노 앉아 뚜껑을 열고 몇 분 후 뚜껑을 닫는다. 그리고 무대 아래에선 사람들의 기침소리, 종이 만지는 소리, 숨소리 등 다양한 소리가 즉석에서 생겨난다.4분 33초 후 존 케이지는 그동안 모든 소리를 생산해 준 관객과 자연애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인사한 후 무대를 떠난다. 연주자가 직접 연주하진 않았지만 모든 소리를 모아 음악을 만든 것.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흰색 회화라는 작품은 아무것도 없는 빈 캔버스로 이루어져 있다.. 걸려있는 조명의 상태나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그림자 등에 의해 캔버스의 모습이 바뀐다.. 이 작품이 케이지에게 4분 33초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존 케이지는 우연성음악의 개척자이자 창시자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음악이라 말한다. 그 어떤소리도 음악의 재료가 될 수 있으며 우리 주변의 일상이 얼마든지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

    참으로 전우주적이고 동양의 불교적인 사상이다. 결국 그의 곡은 이 현실을 넘어 억만 년전 과거에서 부터 앞으로 그가 죽고 난 억만 년 후까지 흐르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우리의 생각과 감정, 우리의 삶,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한 편의 아름다운 곡인 것을.

    평가

    기존에 알고 있던 백남준의 작품들은 티브이, 로봇 등의 알록달록 반짝반짝한 설치작업이라 생각했었는 데 막상 그의 작품세계와 그가 속해있던 플럭서스 예술운동을 보면 그저 첨단 시대의 화려하기만 한 작품들은 아닌 듯하다. 같은 플럭서스 활동을 하던 다른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들을 봐도 때로는 부수고 찢고 자극적인 모습이지만 그 속에는 그 시대의 틀에 박힌 전통적인 예술의 고정관념을 벗고 예술이 삶과 하나 되길 원했던 그들의 고뇌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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